이야기의 몰입

내꺼/장문 2019. 7. 11. 18:56

 

 

 

나는 감동물, 슬픈 멜로물을 싫어한다. 이를테면 자식은 한없이 부모를 못되게 하는데 부모는 자식에게 한없이 잘해주다가 죽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식에게 유언을 한다던가 하는 그런 전개 말이다. 왜냐하면 이러한 시나리오적 장치들은 날 이입-몰입하게 하고 감정적 방어를 무력화시킨다. 조금 말을 이상하게 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말하는 '짠하다'라는 감정을 쉽게 느낀다고 할 수 있겠다. 이야기에 있어서 몰입은 아주 중요하다. 몰입은 구상자가 계획하고 감독한 대로 조성된 조화로운 환경하에 독자나 플레이어를 체험시킨다. 

 

긍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작품이 아닌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시리어스물로 가면 그 난이도가 매우 높아진다. 감독자의 오판으로 관계의 역전이 일어나 몰입이 깨지게 된다면 체험자의 이입은 한없이 추락하게 된다. 이런 주제에서 나는 쉽고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공포, 스릴러라 할 수 있겠다. 내가 공포 장르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조화와 결과물에 있다. 공포는 여러 가지 요소에서 나오지만 보통 내가 선호하는 장르는 '알 수 없다'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. 시각과 청각, 그리고 체험자의 상상력을 이끌어내게 하는 전개의 이런 공포물은 나를 즐겁게 한다.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장르는 사랑하는 동시에 다루기가 너무나도 힘들다. 단 한 가지라도 깨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. 정말로 단 한 가지라도 말이다.

 

레벨 디자인, 버그, 청각 시각적 환경적 조성이 미흡하거나 리듬을 깬다면 체험자는 곧바로 게임의 적으로 돌아선다. 체험자는 작품을 내려다보게 되며 얕보게 되는데 속되게 말해 'X밥'으로 본다는 것이다. 이 순간 감독자와 체험자의 관계는 역전되어버려 공포는 공포의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. 비록 이때를 지나고 지속적으로 플레이하여 관계가 다시 역전되어 몰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 경우는 그렇게 신뢰도 높은 케이스가 아니며 한번 추락한 이미지는 쉽게 돌아오기 힘들다. 사람을 사귀는 것과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. 감독자가 할 일은 최대한 조심스럽고 정성 들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체험자에게 보여줘 자신이 원하는 생각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. 조성의 과정에서 감독자가 할 일은 자신이 '누굴' 상대로, '뭘', '어떻게'할지, '알아'야한다.

 

이입을 쉽게 해주는 장치라는 것은 흥미로운 이야기의 전개나 도구(소재)의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. 흥미로운 이야기는 체험자의 여러 감정을 자극해 빠져들게 하며 이야기와 체험자간의 교류를 맺게 한다. 마찬가지로 사람을 사귀는 것과 같은 것이다. 체험자는 이야기의 여러 가지 요소중 몇몇 가지의 특수한 요소에 꽂힐 수 있으며 이런 꽂힘은 작품에 호감을 사게 한다. 이입은 이 호감을 토대로 작동하기도 한다. 이런 호감의 타입은 작품 외적으로도 존재한다. '좋아하는 작가나 배우', '훌륭한 마케팅'같은 것이 있겠다. 물론 사람을 사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것은 역 호감을 일으킬 수도 있고 이것은 조미료의 조미료에 불과하다. 감독자가 예측할 수 없거나 잘 모르는 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최대한 안정적인 상태로 두는 것이 좋다.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것만을 신중하게 선택해 배치해두는 것이 권장한다.

 

이야기의 재료인 도구에 있어 이입하기 좋은 것은 체험자의 가치관이나 경험에 따라 겪기 쉽고 공감하기 쉬운 것이다. 최상단에 언급한 못 알아먹는 불효자와 고생하는 부모의 관계 묘사가 그러하다. 자식과 부모의 일은 체험자의 피부로 와 닿기에 이입하기 쉽다. 부가적으로 효과적인 소재의 선택은 시대의 가치관과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. 설계자는 이러한 것들을 취합하여 더 나은 선택과 더 나은 결과를 뽑아내는 것이 이상적이라 볼 수 있겠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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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Marhite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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